Merlin은 착륙 직전 3초 안에 엔진을 두 번 다시 켭니다. 누리호 75t 엔진은 아직 한 번도 못 켭니다. 재점화라는 기계적 사건을 해부합니다.
재사용 로켓을 “다시 쓰는 로켓”이라고 부르는 건 결과만 본 표현입니다. 기계의 관점에서 재사용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한 번 켠 엔진을 비행 중에 다시 켜는 것.
Falcon 9 1단은 발사 후 약 160초에 분리되고, 160초 뒤 엔진 3기를 다시 켜서 속도를 뒤집습니다(boostback). 300초쯤 대기권 상부에서 다시 엔진 3기를 켜고(entry burn), 고도 약 1.5km에서 마지막으로 엔진 1기를 켜서 착륙 속도를 0에 맞춥니다(landing burn). 한 비행에 3회의 재점화가 들어갑니다.
누리호는 발사에서 분리, 궤도 진입까지 엔진을 한 번만 켭니다. 한 번 꺼진 75t 엔진은 다시 켤 수 없습니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1회 점화를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재사용 로켓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차이는 엔진의 성능이 아니라 점화 시스템의 설계 사상에서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재밌어집니다.
Merlin 1D가 점화에 쓰는 물질은 TEA–TEB — Triethylaluminum과 Triethylborane의 혼합액입니다. 대기 중 산소에 닿는 순간 점화합니다(pyrophoric). 스파크도, 히터도 필요 없습니다. 챔버에 주입하고 곧바로 LOX와 RP-1을 얹으면 불이 붙어 있습니다.
이 설계의 장점은 단순함입니다. 스파크 플러그가 고장 날 일이 없고, 전원이 없어도 동작합니다. 단점은 탑재할 수 있는 TEA-TEB의 양이 유한하다는 것.
재점화 횟수가 엔진 안에 미리 주입된 화학량으로 결정된다는 건 시사점이 있습니다. Falcon 9은 재사용을 1단에 걸고, 1단의 비행 프로파일을 3회 재점화 이내로 고정했습니다. 이걸 4회로 늘리려면 엔진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SpaceX는 Starship에서 이 구조를 버렸습니다.
Raptor 2는 Torch Ignitor로 점화합니다. 챔버 벽에 박힌 작은 부속이 methane과 oxygen의 예혼합을 스파크로 태우고, 그 불꽃이 메인 챔버로 들어가 연소를 시작시킵니다. TEA-TEB은 없습니다.
이 변경의 진짜 의미는 횟수 제한의 소멸입니다. 전원과 스파크만 살아 있으면 이론상 무제한 재점화. Starship이 지구 귀환 시 3-엔진 착륙 burn을 여러 번 리허설하고, HLS 버전이 달 착륙 후 다시 이륙하려면 이 구조가 필수입니다.
교환 조건은 챔버 압력입니다. Raptor 2는 연소실 압력 약 230 bar. Merlin 1D의 ~100 bar의 2배 이상이고, 현존 상용 엔진 중 가장 높습니다. Full-flow staged combustion 사이클로만 가능한 수치이고, 이 사이클은 터보펌프 2개와 프리버너 2개를 요구합니다. 더 복잡하고 더 비쌉니다.
즉 Raptor는 “재점화 제한을 없애기 위해 엔진 사이클 자체를 바꾼 설계”입니다. 점화 시스템 하나를 건드리면 연소실 설계, 냉각, 터보펌프, 재료 선택까지 연쇄적으로 바뀝니다.
누리호 1단 75t 엔진(KRE-075)의 점화는 파이로 스타트 카트리지입니다. 고체 추진제가 짧게 연소하며 터보펌프를 회전시키고, 그동안 RP-1과 LOX가 챔버에 들어가서 자가착화(hypergolic 아님, 고온 가스발생기 연소에 의한 재연소)합니다. 카트리지는 1회용입니다.
이 선택은 실패가 아니라 목표의 결과입니다. KSLV-II의 목표는 2022년 한국 발사체 자립이었고, 재사용은 설계 목표에 없었습니다. 1회 점화 개방 사이클(gas generator)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증된 구조이고,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합니다. Saturn V F-1도, 현재 Atlas V의 RD-180도 이 계열입니다.
다음 질문은 “그럼 한국도 Torch 점화로 가면 되는가”인데, 여기서 함정이 있습니다. Torch 점화는 엔진 사이클의 일부이고, 현재 한국형 발사체 로드맵의 300t급 엔진(KRE-300)이 가스발생기 사이클을 고수하면 재점화 설계가 의미를 잃습니다. 엔진의 잉여 열량과 압력을 써서 터보펌프를 돌려야 2회차 점화에서도 안정적으로 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재사용 로켓의 부재”는 엔진 사이클 선택 시점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1회용 점화를 쓰는 나라가 재사용에 도달하려면 엔진을 갈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