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SSIER · 001 · PROPULSION · 추진2026.04.22 · 9 MIN · DEPTH 4/5

한국은 왜 아직 재사용 로켓이 없는가

Merlin은 착륙 직전 3초 안에 엔진을 두 번 다시 켭니다. 누리호 75t 엔진은 아직 한 번도 못 켭니다. 재점화라는 기계적 사건을 해부합니다.

01 / THE 3-SECOND PROBLEM

재사용은 발사가 아니라 착륙이 만든다

재사용 로켓을 “다시 쓰는 로켓”이라고 부르는 건 결과만 본 표현입니다. 기계의 관점에서 재사용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한 번 켠 엔진을 비행 중에 다시 켜는 것.

Falcon 9 1단은 발사 후 약 160초에 분리되고, 160초 뒤 엔진 3기를 다시 켜서 속도를 뒤집습니다(boostback). 300초쯤 대기권 상부에서 다시 엔진 3기를 켜고(entry burn), 고도 약 1.5km에서 마지막으로 엔진 1기를 켜서 착륙 속도를 0에 맞춥니다(landing burn). 한 비행에 3회의 재점화가 들어갑니다.

누리호는 발사에서 분리, 궤도 진입까지 엔진을 한 번만 켭니다. 한 번 꺼진 75t 엔진은 다시 켤 수 없습니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입니다. 처음부터 1회 점화를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재사용 로켓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차이는 엔진의 성능이 아니라 점화 시스템의 설계 사상에서 나옵니다. 여기서부터 얘기가 재밌어집니다.

02 / TEA-TEB

엔진 안에는 공기에 닿으면 불붙는 액체가 산다

Merlin 1D가 점화에 쓰는 물질은 TEA–TEB — Triethylaluminum과 Triethylborane의 혼합액입니다. 대기 중 산소에 닿는 순간 점화합니다(pyrophoric). 스파크도, 히터도 필요 없습니다. 챔버에 주입하고 곧바로 LOX와 RP-1을 얹으면 불이 붙어 있습니다.

이 설계의 장점은 단순함입니다. 스파크 플러그가 고장 날 일이 없고, 전원이 없어도 동작합니다. 단점은 탑재할 수 있는 TEA-TEB의 양이 유한하다는 것.

DATA POINT
Falcon 9 1단 엔진 수
9
비행당 재점화 횟수 (착륙)
3
엔진당 TEA-TEB 주입 한계 (공개)
~5회
Merlin 1D 추력 (sea level)
854 kN
OUT: SpaceX Falcon 9 User's Guide · 2021 revision

재점화 횟수가 엔진 안에 미리 주입된 화학량으로 결정된다는 건 시사점이 있습니다. Falcon 9은 재사용을 1단에 걸고, 1단의 비행 프로파일을 3회 재점화 이내로 고정했습니다. 이걸 4회로 늘리려면 엔진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SpaceX는 Starship에서 이 구조를 버렸습니다.

03 / RAPTOR'S CHOICE

스파크로 돌아가다 — 대신 챔버 압력 230 bar

Raptor 2는 Torch Ignitor로 점화합니다. 챔버 벽에 박힌 작은 부속이 methane과 oxygen의 예혼합을 스파크로 태우고, 그 불꽃이 메인 챔버로 들어가 연소를 시작시킵니다. TEA-TEB은 없습니다.

이 변경의 진짜 의미는 횟수 제한의 소멸입니다. 전원과 스파크만 살아 있으면 이론상 무제한 재점화. Starship이 지구 귀환 시 3-엔진 착륙 burn을 여러 번 리허설하고, HLS 버전이 달 착륙 후 다시 이륙하려면 이 구조가 필수입니다.

교환 조건은 챔버 압력입니다. Raptor 2는 연소실 압력 약 230 bar. Merlin 1D의 ~100 bar의 2배 이상이고, 현존 상용 엔진 중 가장 높습니다. Full-flow staged combustion 사이클로만 가능한 수치이고, 이 사이클은 터보펌프 2개와 프리버너 2개를 요구합니다. 더 복잡하고 더 비쌉니다.

즉 Raptor는 “재점화 제한을 없애기 위해 엔진 사이클 자체를 바꾼 설계”입니다. 점화 시스템 하나를 건드리면 연소실 설계, 냉각, 터보펌프, 재료 선택까지 연쇄적으로 바뀝니다.

04 / KSLV–II

누리호 75t — 1회용 점화, 이유가 있다

누리호 1단 75t 엔진(KRE-075)의 점화는 파이로 스타트 카트리지입니다. 고체 추진제가 짧게 연소하며 터보펌프를 회전시키고, 그동안 RP-1과 LOX가 챔버에 들어가서 자가착화(hypergolic 아님, 고온 가스발생기 연소에 의한 재연소)합니다. 카트리지는 1회용입니다.

이 선택은 실패가 아니라 목표의 결과입니다. KSLV-II의 목표는 2022년 한국 발사체 자립이었고, 재사용은 설계 목표에 없었습니다. 1회 점화 개방 사이클(gas generator)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검증된 구조이고, 개발 리스크를 최소화합니다. Saturn V F-1도, 현재 Atlas V의 RD-180도 이 계열입니다.

COMPARISON · IGNITION ARCHITECTURE
Merlin 1D · Falcon 9 (US)TEA-TEB · 3~5회
Raptor 2 · Starship (US)Torch · 무제한
Archimedes · Neutron (US, 2026)Torch · 재사용 설계
RD-180 · Atlas V (RU)Pyrotechnic · 1회
KRE-075 · 누리호 (KR, 2022)Solid cartridge · 1회

다음 질문은 “그럼 한국도 Torch 점화로 가면 되는가”인데, 여기서 함정이 있습니다. Torch 점화는 엔진 사이클의 일부이고, 현재 한국형 발사체 로드맵의 300t급 엔진(KRE-300)이 가스발생기 사이클을 고수하면 재점화 설계가 의미를 잃습니다. 엔진의 잉여 열량과 압력을 써서 터보펌프를 돌려야 2회차 점화에서도 안정적으로 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재사용 로켓의 부재”는 엔진 사이클 선택 시점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1회용 점화를 쓰는 나라가 재사용에 도달하려면 엔진을 갈아야 합니다.

05 / WHAT TO WATCH

2027년에 봐야 할 세 가지

  1. 이노스페이스 한빛-TLV 재점화 로드맵. 현재는 하이브리드(HDT-K) 15t 엔진으로 1회 점화. 재사용 소형발사체 경쟁에서 재점화 시연이 2027 지표.
  2. 페리지 Blue Whale 2 설계 공개. 전기펌프 기반 소형 엔진을 재점화 가능하게 만들 경우 Rocket Lab Electron과 같은 체급에서 가격 경쟁.
  3. KRE-300 사이클 최종 결정. 가스발생기 고수 시 재사용은 차세대 엔진 기다려야. Staged combustion 전환 시 재사용 2030년 실현 가능성.
SOURCES
  • SpaceX Falcon 9 User's Guide (2021) — 1단 재사용 시퀀스 및 엔진 스펙
  • NASA / SpaceX Raptor 2 공개 프레젠테이션 (McGregor 2023) — 챔버 압력 230 bar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KSLV-II 기술 보고서 (2022) — KRE-075 점화 카트리지 구조
  • Huzel & Huang, “Modern Engineering for Design of Liquid-Propellant Rocket Engines” — 엔진 사이클 비교의 고전
  • Ignition! · John D. Clark — TEA/TEB의 화학사. Pyrophoric 점화의 표준 레퍼런스
DOSSIER 001 · 최종 수정 2026.04.22 · Orbit Korea Lab · 독자 피드백 editor@orbitkorea.com